※ 개인 백업용. 의역 및 오역 多
어린 시절의 별명이 '할아버지' 였던 나다.
초등학생 때, 여럿이 놀면서 술래잡기를 하면, 나는 항상 양손을 가슴 앞에 두고, 마치 찻잔을 든 것 같은 모습이 되어 정좌를 했다. 그리고 스스스 하고 소리를 내고, 뜨거운 차를 마시는 흉내를 내며 말한다.
"오늘도 차가 맛있구먼"
왜 그런 걸 하는가 하면, 그렇게 하면 쫓아다니는 쪽은 전의를 상실해서 다른 사람을 쫓아가게 된다. 어쨌든, 도망치는 것이 귀찮고 번거로웠다. 그러한 인간으로서 어느 의미로는 탁월한 대처 방식을 자주 하고 있었기 때문에, 언제부턴가 내 별명은 '할아버지'가 되었다.
그때부터 어머니에게 평소에도 "너는 못생기고 다리가 짧아서, 특징도 없어"라고 여러 번 들어왔기 때문에, 학급 안에서 눈에 띄고 싶다는 의욕이 생겨날 일도 없고, 더욱이 텔레비전을 보고 있으면, 억지로 시티 보이즈의 코미디 영상을 보여주기도 하고, "있잖아, 『だいじょうぶだぁ(일본의 코미디 방송)』의 게이샤 코너는, 시무라 켄보다 에모토 아키라 쪽이 대단해"라고 참견하거나 하기 때문에, 순수하게 감화되어 버린 나는 초등학교 졸업문집의 '앞으로 되고 싶은 직업'에 '에모토 아키라'라고 쓰는 매니악하고 어른스러운 아이가 되어버렸다.
지금도, 어른스럽다고 자주 듣는다. 확실히 유행하는 것에 그다지 흥미가 안 생기고, 자신이 만드는 것도 유행과는 무관한 것들 뿐이다.
사케록(SAKEROCK)을 시작했을 때에도, 음원만 들은 사람들에게 "좀 더 아저씨들의 밴드인가 생각했어요"라고 자주 들어왔다. 당시에는 아직 스무 살 정도였고, 젊은이들의 인스트 밴드라고 하면 즉흥 연주(ジャム) 계열이나 스카 밴드 같은, 멋진 패션 요소를 가진 밴드가 많았기 때문에, 우리 같은 음악은 어쨌든 소박하고 매니악하게 들렸던 모양이다. 이벤트에 출연했을 때에도, 합동 공연의 상대를 보러 온 아저씨가 "엄청 좁은 곳을 노리네"라고 말하지만, 별로 노리려는 건 아닌데 말이지,라고 자주 생각했다.
"겐 군은 무조건 일찍 죽을 거야"
밴드 멤버인 하마노에게 자주 들었다.
아무래도 나는, 불행해 보이는 이미지도 있는 모양이다. 옛날부터 몸도 약하고 내성적인 성격이라는 것도 있고, 겉으로 보면 몸을 깎아서 창작활동을 하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실제로는 느긋한 면도 있고, 게으른 편이고, 그렇게 몸을 깎지는 않았다.
말하자면, 나이가 들어서 수수하게 죽을 것 같다니, 그건 이미 평범한 할아버지가 아닌가.
나의 할아버지는 채소 가게를 하셨었다.
그리고 그 가게에서 우리 아버지가 일하셨다. 할아버지는 옛날에 꽤 엄격하셨던 것 같고, 아버지도 어린 시절에는 자주 혼나서, 손을 들어 올리는 일도 적지 않았다고 한다.
하지만 내가 알고 있는 할아버지는, 그런 건 상상도 못 할 만큼 부드러운 얼굴이어서, 가게 자체도 할아버지의 인품으로 유지되는 듯한 부분이 있었다.
아버지는 트럭에 야채를 가득 싣고 매일 배달에 나가고, 할아버지는 언제나 가게에서 손님을 대하고 있었다. 실없는 이야기는 하지 않고, 부드럽고, 유머가 있다. 그런 느낌이라서, 동네 아주머니들에게도 인기가 있었다.
중학생 시절, 매일 밤 가게 마감을 도와 오백 엔을 받는, 사소한 아르바이트를 시켜주셨다. 아버지는 배달로 바쁘셨기에, 늘 할아버지와 단 둘이서 정리했었다. 하지만 서로 말이 없는 사람이고, 나도 나대로 다른 종류의 '할아버지'였기 대문에, 거의 대화는 없었다. 그저, 불필요하게 신경을 쓰지 않아도 되는 시간이 정말 편하고, 왠지 모르게 재미있었다.
할머니를 먼저 보내시고 혼자 생활하고 있었던 할아버지를, 어머니는 '자립한 노인'이라고 부르고 있었다. 80세를 넘겼는데도 청소도 빨래도 스스로 한다. 식사도 제대로 혼자서 만든다. 불평도 하지 않는다. 아들이나 딸에게 의지하지 않는다. 할아버지는 어릴 때 부모님을 잃었다고 한다. 아마도, 그때부터 계속 혼자서 살아온 거라고 생각한다. 그러니, 얼마나 나이가 들어도 제대로 혼자서 살아왔다.
할아버지는, 87세가 되던 때, 뇌졸중으로 쓰러졌다.
목숨은 구했지만, 손발에 마비가 남았다. 병문안을 가면, 할아버지는, 수줍어하며 말했다.
"경기장에 가고 싶어"
카와구치 오토 경기장에 대한 것이다.
오토 레이스는, 경마나 경륜과 같이, 오토바이 경기에 돈을 걸어서 즐긴다. 할아버지는 오토 레이스를 정말 좋아하셨다. 경기장 내에 있는 식당과 상점에 채소를 공급하고 있던 것도 있고, 가장 친근한 오락이었다.
그 말을 듣고, 아직 놀고 싶어 하시는구나 싶어서 나는 웃어버렸다.
재활 기간을 끝내고 무사히 퇴원해서, 가게에도 나올 수 있게 된 할아버지가, 할아버지를 만나러 온 나에게, 작은 소리로 중얼거린 적이 있다.
"그림을 그려볼까 생각하고 있어"
그런 말을 하다니 의외여서, 놀랐다. 그래도, 엄청 좋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꼭 해봐요"라고 말했다.
그때 나는 사케록에서 『YUTA』라는 앨범을 제작 중이었고, 레코딩을 하고 있던 장소는 쿠니타치에 있는 지하 술집이었다. 자체 제작이라 스튜디오를 빌릴 예산도 없고, 아는 술집 주인에게 부탁해서 엄청 저렴한 가격으로 가게를 빌려주었다.
심야, 술집의 영업이 끝날 무렵에 모두 모여서, 그대로 아침까지 녹음하고 점심쯤 돌아간다는 작업을 매일, 몇 달씩 반복하고 있었다. 물론 레코딩 스태프 같은 건 한 명도 없이, 멤버가 가지고 있던 하드 디스크 레코더를 써서, 우리들만으로 녹음했다.
작업은 난항이었다. 녹음이 진행되어도, 싫증이 나면 그 데이터를 지우고, 어레인지를 처음부터 다시 생각한다. 명확한 비전이 없었음에도, 쓸데없이 엄격했다. 좋은 아이디어가 나올 때까지 끙끙거리며 생각하고, '일단 해보자'라는 단어조차 말하기 어려울 정도로, 찌릿찌릿한 무거운 공기 속에서의 녹음이었다.
날에 따라서는 1초도 녹음하지 못하고 돌아가는 경우도 있었고, 그런 날에는 가게에서 계단을 올라 지상으로 나와, 아침 햇살을 맞으며 '뭘 하고 있었던 걸까'하고 자주 낙담했다. 이 방향이 틀리지 않았다는 확신은 있었지만, 당시 팬이라고는 한 명도 없었고, 누군가 들어줄지도 모른다는 것에 왜 이렇게까지 집착하고 있는지, 늘 헷갈리게 되었다. 어쨌든 그 몇 달은 '즐거운 밴드 생활' 과는 거리가 멀고, 상당히 혹독한 수행 같았다.
그날도, 자신이 쓴 곡의 편곡이 막혀서, 늘 그렇듯이 괴로워하고 있었다. 그게 몇 시간 동안 계속되고, 이대로는 안 되겠다고 생각해 레코딩을 중단하고, 다 같이 패밀리 레스토랑에 야식을 먹으러 가기로 했다.
나는 침울해져 있었다. 어떤 아이디어도 나오지 않는 자신이 한심했고. 이번에는 멤버들뿐만이 아니라, 보조 뮤지션도 불러서 함께했다. 게다가 어린 여자였다. 그녀도 사실은 빨리 집에 가고 싶었을 텐데, 몇 시간이고 함께하게 만들었다.
이상해진 것은 그 후였다.
갑자기 활기를 띠게 된 것이다.
급속도로 텐션이 올라가고, 들뜨기 시작했다.
뭔지는 모르겠지만 의욕이 생긴 나는 "빨리 돌아가서 녹음하자"라고, 서둘러 주문한 야식을 먹었다.
그리고 술집으로 돌아와, 팟 하고 떠오른 편곡으로 녹음을 시작하니, 굉장히 잘 나왔다. 눈앞의 안개가 걷힌 것 같았다. 그리고 무엇보다 기뻤다.
다음날 정오가 지나서야 녹음이 끝났고, 만족하면서 지상으로 올라오니 휴대전화가 울렸다. 부재중 전화가 1건 있었다. 들어보니, 몹시 어두운 목소리의 요코쨩(호시노 겐의 어머니. 호칭은 '육아는 계속된다' 참고)이었다.
"할아버지가 돌아가셨습니다"
잠깐 의미를 알 수 없었다.
"새벽 세시 즈음에, 집에서 돌아가신 것 같아요. 빈소 준비를 해야 하니까, 이거 들으면 바로 전화하렴"
갑자기 눈물이 났다.
할머니가 돌아가셨을 때도, 동급생이 죽었을 때도 울지 않았는데, 눈물이 주룩주룩 흘러내렸다. 혼란스러우면서도, 바로 전화를 걸었다. 눈물은 멈추지 않고, 흐느끼듯이 울었다.
"저번 뇌졸중에서 1년도 지나지 않았는데 말이야. 아침에 아버지가 가게에 갔더니, 이미 돌아가셨다고 하더라. 그래도 고통스러운 모습이 아니라서, 편하게 떠나신 게 아닐까 싶어"
이야기를 들으면서, 또 울었다.
울면서, 왜 이렇게 눈물이 나오는 걸까 신기했다.
할아버지는 좋아했지만, 그렇게까지 할아버지에게 의존적인 아이도 아니었고. 아아, 하지만, 방금 들었던 할아버지가 돌아가신 시간은, 내가 패밀리 레스토랑에서 갑자기 활기를 띤 시간과 같지 않은가.
...... 만나러 와주신 걸까.
그래서 내가 울고 있는 건가.
그 후 바로 할아버지 댁으로 달려갔다. 부모님과 아버지 쪽 친척도 이미 모여있어서, 나를 손짓으로 불렀다.
"겐, 만져 보렴"
이불에 누워 있던 할아버지는, 얼굴 근육이 평소와 다르게 보여서 조금 위화감이 있었다.
"차가워. 아이스크림 같아"
시체를 만지는 것은 처음이었다. 나는 주뼛거리면서 할아버지의 이마를 만졌다.
거의 얼음 같았다. 깜짝 놀랄 정도로 차가웠다.
놀람과 동시에, 마음속에서 거대한 생각이 떠오르고, 웃어버렸다.
살고 싶어 지네 이건.
조금 부끄러울 정도로, 긍정적인 발상이다. 하지만 이미 생각해 버렸으니 어쩔 수 없는 것이다.
그때까지는 가까운 사람의 죽음이라는 것은 당연히, 힘들고 우울해지는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몸에 닿는 순간, 이상하게 긍정적인 내가 있어서, 어쨌든 살고 싶다고 생각했다. 너무 생각해서 살짝 웃어버린 것이다.
친척들도 어쩐지 웃고 있다. 집 전체에 건강한 분위기가 흐르고 있어서, 엄청 재미있었다.
열심히 살아온 사람의 죽음에 닿는다는 것은, 이렇게까지 힘을 얻을 수 있는 것이었던가. 나는, 할아버지의 발에 버선을 신기면서, 매우 감탄했다.
그 후, 장례식장에서 본 포스터를 보고, 나는 그때 녹음해 둔 곡을 「七七日」이라는 제목으로 정했다.
「七七日」이라고 쓰고 「しじゅうくにち」라고 읽는 것 같다.(사망으로부터 49일째 되는 날을 뜻하는 사십구재) 할아버지 덕분에 만들어진 이 곡을 들으면서, 49일의 여행을 해주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49'는 '7x7'이니까 '칠칠재'라는, 농담 같은 표기 방식도, 할아버지 같은 느낌이 들었다.
몇 달이 지나고, 녹음을 전부 끝낸 우리들은, 곡의 믹스다운(작업 중인 여러 개의 개별 오디오 트랙의 볼륨, 패닝, 이펙터 등을 세밀하게 조절하여 하나의 완성된 스테레오 파일로 합치는 과정)을 하기 위해, 우리 집에 있었다.
예산이 없기 때문에 스튜디오를 빌릴 수 없고, 오디오 마니아이기도 한 아버지의 자랑스러운 스피커가 있는 집에서 하기로 한 것이다.
사케록의 멤버를 초대해서, 아버지의 방에서 믹스다운을 했다.
역시 작업은 난항이고, 특히「七七日」의 믹스에는 고민하게 되었다. 그때는 내가 장비를 만지작거리며 음을 조절하고, 다른 사람들은 뒤쪽 소파에 앉아 그것을 들으면서, 이러쿵저러쿵 이야기했다.
아무리 해도 진전이 없이 몇 시간이 흘렀다. 나는 너무 답답해져서, 머리를 감싸고 몸을 웅크렸다.
그러자, 뒤에서 톡 하고 어깨를 두드렸다.
"잠깐 쉬자"라고 말한 듯한 기분이 들어서, 헤드폰을 벗고, "그렇네"라며 뒤를 돌아보았다.
아무도 없었다.
거실에서, 멤버와 부모님이 이야기하는 소리가 들렸다. 아무래도 간식을 먹고 있는 것 같다. 방에는 나 혼자였다. 작업에 집중한 나머지, 모두가 나갔는데도 알아채지 못한 모양이다.
문득 다시 돌아보면, 대각선 앞쪽에 할아버지의 불단이 있었다.
또 와주신 걸까.
어쩌면, 계속 가까이에 있는 건 아닐까.
그렇게 생각하니 눈물이 맺혔다.
얼마 지나지 않아, 아버지로부터 '할아버지의 유품이야' 라며 모자를 받았다.
회색의 헌팅캡으로, 할아버지가 자주 쓰던 것이다.
시험삼아 써보았다.
놀라울 정도로 어울리지 않았다.
지금도 가끔 써보고 있는데, 이게 전혀 어울리지 않는다. 왠지 모르게 혼자서 살아온 할아버지와의 수준 차이를 상징하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든다.
어쩌면 앞으로 한 사람으로 성장했을 때, 갑자기 어울리게 될지도 모르니까, 언제라도 쓸 수 있게, 내가 산 모자들과 함께 옆에 놓아둔다.